‘대화’는 우리 시대를 설명하는 주요한 열쇳말이다. 대화를 둘러싼 수많은 실패의 경험들(불가능한 대화) 속에서도 우리는 끝끝내 저 ‘가능한 대화’라는 이상을 포기할 수 없다. 관계는 고립되고, 투박한 진영 논리만이 횡행하는 위기의 민주주의 시대, 그리고 ‘위험 사회’ 속에서 대화는 정녕 가능한 것인가. 가능하다면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끊임없이 붕괴하고 있는 동시에 새롭게 빌드업 되기도 하는 ‘(불)가능한 대화’의 공간들을 돌아보고 예술적 형식의 언어로 표현해보고자 한다.
- 이종찬(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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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ide> 💡 개별적 보편팀은 문화예술교육의 다양한 가능성을 장르의 구분없이 실험하고 실천해보고자 합니다. [불]가능한 대화라는 주제를 오픈 워크숍을 통해 탐색하고 이후 함께 실험하고 교류하며 확장하고 싶은 분들을 초대합니다.

📍 장르적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이어나가기 위해 우리가 마주한 예술교육, 그리고 예술언어안에서 일어나는 (불)가능한 대화를 이해하기 위한 3번의 오픈 워크숍 [너비] 📍오픈워크숍 [너비] 종료이후 계속 실험을 이어나가고자 하는 분들과 함께 확장하는 시간인 [깊이]

너비와 깊이를 지나며 문화예술교육 실천가와 참여자가 나누는 끝없는 대화인 예술적 실천을 실험하고 이어나가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 액션리서치+네트워크 모임으로 준비된 **[깊이]**는 참여자들과 함께 실험을 이어나가기 위해 2회 이상 참여한 분과 함께 할 모임비와 재료비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  "개별적 보편'팀의 [너비와 깊이]활동은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관, ‘2022년도 한국 아이택 허브 운영 연계 국내 예술교육실천가 교류 활성화 지원 프로젝트, <마음이 하는 일 (You are What You Do, YWYD)>’의 일환으로 운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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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별적 보편 | 팀 소개

구자민

구자민은 바이올린 연주와 음악교육, 음악이 매개가 되는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시스템의 기억과 데이터를 수집한 사운드, 악기연주, 영상매체를 활용한 설치 작업 등으로 본인의 삶을 기록하며 사회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작업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auftakt007/

Jamin Gu (@auftakt007)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권정원(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세상에서 매일같이 일상의 비일상성을 경험하며 더더욱 궁금증으로 가득찬 나날을 보내는 중입니다. 나에게 익숙한 동료들이 아닌 전혀 새로운 동료, 친구, 선배를 만나며 제 세계 역시 넓어지고 풍부해짐을 느낍니다.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을 통해 더 많은 질문을 이어가려 합니다.

www.instagram.com/_grumpy_june/

june (@_grumpy_june)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김재현(알렉스)

김재현(알렉스)은 누구에게나 있지만 서로 다른 언어로 감각하는 ‘판타지아’를 주제로 작업하는 매체미술작가입니다. 예술의 언어적 성격을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는 예술교육철학 연구가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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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ex Jaehyun Kim (@fantasia_anyway) * Instagram photos and videos

문해주(월광)

문해주는 사람과 사물 주변에 함께하는 것들을 잘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존재와 지역을 리서치, 참여, 조형 작업으로 표현하는 설치미술작가입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관심을 두고 예술교육 활동을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moonnine84/

이종찬(제이)

평화학 연구자. 대학(원) 영문과에서 문예비평 및 문화이론을 공부하고, 비판적 문화연구 집단 ‘문화사회연구소’에서 활동했다. 대학원 평화학과 박사과정에서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다. 경계의 사유로부터 촉발된 문학과 예술의 사회적 존재론에 관심이 많다.

https://www.instagram.com/leverty2

너비와 깊이 | 오픈 워크숍과 네트워크

너비 | 오픈 워크숍

<aside> 💡 수많은 네트워크 모임들이 생기고 사라지는 현실 속에서 단순한 사교적 네트워크가 아니라, 지금-여기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언어로 진지하게 소통하고 담아낼 수 있는 (말의 가장 바른 의미에서) ‘오픈’테이블을 지향합니다. 진입 시기에 따른 차별 없이 우리들 공동/공통의 관심 의제를 상호 실천하는 공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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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 액션리서치와 네트워크

<aside> 💡 말들은 차고 넘치지만 대화에는 실패하는 역설적인 시대입니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이와 관련하여 ‘빈말’이라는 표현으로 현상의 핵심을 정확하게 간파한 바 있습니다.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에서 ‘(불)가능한 대화(dialogue)’를 메인 테마로 설정한 이유입니다. ‘대화의 (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파고들고 독창적인 방식의 예술 언어로 표현해보고자 합니다. 다양한 장르의 작업자들이 교차하는 학제간(inter-disciplinary) 작업을 통해 예술적 표현의 잠재성을 최대한 끌어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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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비와 깊이

기록 |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

기획의 시간, 연구의 시간에 대한 기록. 실천이 있기 전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고민을 이어나가 현장에 담아내는 문화예술교육자들은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기록을 남기려 합니다. 우리가 나누는 대화의 기록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실천가들의 언어담아내고자 하는 가치와 방향을 함께 공유하길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것 | 회의기록

너비와 깊이 | After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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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는 얼굴

손정아

신기하게 충만한 만남이었다. 친한 친구와의 수다에서 지쳐 나가떨어지는 내가, 막히는 길 위에서 만남의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소비하면서도 아득바득-누가 ‘꼭 오세요’ 한 것도 아닌데-. 처음은 호기심이었고 다음엔 신이 나버렸고 차차 자발적으로 알고 싶고 나중에는 내 목소리도 내고 싶어졌다. 너무나 뻔한 이야기 같아 민망하지만, 말 그대로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다 보니 나를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수줍은데 다른 누군가가 수줍어하는 걸 보는 때,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던 요구가 누군가의 관심사와 맞아떨어져 무심히 채워질 때, 나는 ‘(불)가능한 대화’가 떠올랐다. 그 모호한 것들이 뒤섞여서 채워진 것들이 ‘소통, 위로, 공감, 자각, 앎’ 의 어느 지점쯤에서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흰 눈이 온 바깥 풍경을 보면서 아무 상관없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주 본 얼굴이나 오래 보지 못한 얼굴이나 마지막 모임에서 정현작가님이 나누어주었던 이야기처럼 신기하게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건대 일로 만났다면, 더 자주 만났다면 어땠을까? 지금 느끼는 것과는 달랐으리라고 추측한다. 우리들의 대화는 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설득이나 표현의 압박은 없었고, 활동은 하고 싶은 것은 있었지만 해야 하는 것은 없었다. 참여자인 나로서는-기획자의 입장과는 다르겠지만-개방감이 흐르는 공기 안에서 함께 모여 이렇게 저렇게 존재하는 것으로 각자의 몫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깔깔 거리며 웃고, 투덜투덜 하고, 침묵하며 바라보고. 선선하고 유동적인 거리감으로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내 안에 가득 채워졌다. 얼마 전 ‘어떻게 하면 예술교육을 “잘” 할수 있을까?’ 하는 나의 질문에 멘토에게 ‘빈칸’이라는 대답을 들었던 것이 생각난다. 지난 ‘너비’와 ‘깊이’의 시간들을 되돌아보니 내가 하고 싶은 예술교육의 모습과 닮아있다. 기획자에게 어떻게 한 것인지, 의도는 한 것인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자세히 좀 물어봐야겠다.

[불]가능한 대화

-너비와 깊이

류정현

어떤 예술 언어는 난해하고 딱딱한 껍데기들로 꽁꽁 둘러싸여 있어서 당최 속을 들여다볼 수가 없다. 대화는 불통이다.  또 어떤 언어들은 너무도 좁고 얕은 나머지 지극히 간단한 내용조차도 도저히 담을 수가 없다. 대화는 불가능하다.  도대체 해결책은 있는 걸까. “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개성만큼이나 특별한 언어들을 가지고 있다. 이 언어들은 그 자체로 영롱한 빛을 발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서로 얽히고 설키면서 훌륭한 소통의 도구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 대부분은 이 중요한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혹은, 잊은 채)로 살아가는 듯하며, 나 또한 한동안은 일상의 바쁨을 핑계 삼아 그 소중한 언어들을 끄집어낼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심각한 상황을 경험하기도 했다.. 치료가 필요했다.

지난 9월부터 꾸준히 이어 온 <개별적 보편> 팀과 함께 한 활동들은 이런 나의 고민과 갈증을 조금씩 해소시켜 주었다. 늦은 저녁시간 퇴근과 동시에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갔던 첫 모임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다과와 식사, 옹기종기 모여서 담소를 나누던 다양한 분야의 참석자분들, 공연과 토론 시간 내내 감동과 신남이 가득했던 공간. 문득, 내 예술 언어에 대한 고민의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형태로 그 여정이 펼쳐질까 호기심도 발동했다. 신기하게도 워크숍 동안 몸 속 곳곳 에너지가 채워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이 에너지들은 <너비>활동들과 이후 좀 더 심도 있게 펼쳐지는 <깊이>활동들까지 이끌리듯 참여하게 되는 원동력이 된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재미와 충만한 자유, 함께하는 즐거움, 사색의 진지함, 그리고 훈훈하게 퍼져오는 따사로움.. 어쩌면 이것이야 말로 예술실천의 시작을 위한 핵심 요소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던 하루였다.

드디어 3개월의 짧지 않은 여정의 대단원인 결과 공유회의 날을 맞이했다! 마지막 수업이 늘 그러하듯, 뿌듯하면서도 아쉬운 양가적 감정이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이 날도 쥰이 식사와 다과를 넉넉히 준비해 주셨고, 심지어는 테이블 세팅까지 완벽히 설치해 두어서 너무도 감사했다.

**<따로 또 같이>**라는 타이틀로 진행된 마지막 워크숍은 각 4개의 다양한 예술 언어가 한 장소에서 동시에 발화되어 무척 흥미로웠다. 정아 선생님이 진행해 주신 가곡 워크숍은 마지막 시간의 감동적 시작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선생님의 부드러우면서도 힘있는 목소리와 시구절의 조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켜 눈시울을 뜨겁게 달구었다. 음악의 위대한 치유력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이 날은 성현 선생님의 멋진 게릴라 콘서트를 경험하는 행운도 누릴 수 있었으며, 이 공연은 명창 월광님의 화려하고 강력한 퍼포먼스로 장렬히 마무리된다... )

3개의 모둠 워크숍은 각각의 테이블에서 진행되었다. 먼저, 희주 선생님의 마블링 체험 워크숍은 그 결과물을 보기만 했음에도 흥미로움이 한껏 묻어났다. (워크숍 진행을 해야 했으므로 희주 선생님 수업에 참여하지 못해 아쉬웠으나, 이 후 선생님의 배려로 체험을 할 수 있게 되어서 몹시 기뻤다!) 종찬 선생님이 진행한 함께 읽는 시 수업도 궁금했는데, 선생님이 인쇄물 자료를 한 부 따로 챙겨 주셔서 너무나 감사했다. 혼자서라도 찬찬히 낭독하며 숙고해 보아야겠다. 그리고 내가 진행했던 ‘마음과 감각으로 느껴보는 자화상 그리기’는 지난 시간 진행했던 내용의 연장선 상에 있다. 하지만 이번은 서로 자화상(초상화)을 그려 주며 상대방을 느껴보고 알아가는 활동이다.

이 날은 참석하신 모든 분들의 열정적인 발제와 토론으로 인해 늦은 시각까지 진행이 되었다. 비록 시간은 많이 흘러갔으나 매우 만족스러웠고 헤어짐이 아쉬웠던 하루였다.

이렇게 <개별적 보편/[불]가능한 대화>와 함께 했던 3개월간의 긴 여정은 ‘나’ 라는 세계 안에 갇힌 채, 그저 옹알이에 불과했던 ‘불(不)가능한 대화’를 ‘우리’ 라는 넓은 세계로 이끌어 내어 그 견고한 껍데기([不])를 깨뜨려서 한껏 말랑거리는 ‘가능한 대화’ 로 오롯이 기능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물론 이 ‘가능한 대화’는, 복잡하진 않지만 깊은 울림이 있고,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누구든 포용할 수 있는 보편적인 언어로 발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향후 문화예술교육을 위한 궁극적인 숙제로 이어질 것이고, 동시에 나의 예술 언어의 지속적인 연구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너비와 깊이> 워크숍을 이끌어 주신 운영진 분들과 참여자 여러분들, 그리고 특별히 워크숍을 처음부터 끝까지 적극적으로 서포트해 주신 쥰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시간의 부족함에 아직 못다 전한 나의 이야기

-다음에도 이어지길 바라며 후기 속에 나를 녹이다 나희주

나의 예술 언어는 ‘언어’이다. 나는 말을 좋아한다. 재밌는 말을 듣는 것도 좋고 재밌는 말을 듣고 반응하는 것도 좋다. 첫날 호기심을 안고 찾아갔던 그곳. 무슨 이유였을까? 나는 늦어버렸다. 아마 다른 강좌를 들었거나 다른 모임을 갔었거나 다른 일들 속에서 시간 배분을 잘못했던 탓이었으리라.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세상은 금지하고 권고하지 않는 '지각'이라는 것을 통해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어떤 반짝이는 가치를 주기도 한다. 그날 늦게 도착한 나의 이름을 물어보고 인사를 한 뒤 조금 전까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알려주었던 모둠장 쥰! 감동!! 옆자리를 내어주고 말을 건네주고 마음을 전해주던 성현쌤! 바이올린 연주를 마친 뒤 타조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신 자민쌤! 윈도우에 대한 이야기를 화두로 이끌던 종찬쌤! 자민쌤과 함께 의자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의자들의 스팟이 담긴 예술적 앱을 소개해주고, 의자 사진들을 나눠주고, 그날 그린 그림까지 나눠준 해주쌤! 그렇게 첫 시간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만두를 사서 길에서 서서 먹으며 학교 임원회 OT 준비를 했었던 게 기억난다.

그렇게 모임 전후로 바빴음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개근상을 받을 뻔했던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건 즐거웠기 때문이다. 배려받고 존중받는 즐거움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솔직히 알렉스쌤과 김호연쌤이 주도하시던 몸의 움직임으로 소통하던 두 번째 시간은 힘들었었다. 몸치인 건 둘째치고 낯가리는 성격이라 아직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이름을 알아가며 탐색중인데 그들의 동작을 따라 하며 나에게도 동작을 해보라하니 힘들었다. 그래서 중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내 자리에 돌아가서 물도 마시고, 저들 멀리 떨어져 거울 앞에 붙어있는 테이프에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는데 누군가 나를 중앙으로 부르는 동작을 연구하자 하였고 그렇게 끈들에 이끌려 들어가면서 '왜 혼자 따로 있으면 안 되는 걸까?'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알았다고 한다. 누가 편해하는지, 누가 불편해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무언가’들이 있다는 걸 그날 후기 나눔 시간에 들었다. 그때 나는 힘들어서 쉬었다는 이야기만 했었고, 찐 후기는 말하지 않았었는데 결국 이렇게 쓰게 되는구나! 그리고 지금 생각한다. 이제는 이름도 알고 특성도 아는 그들과 다시 한 번 그 수업을 해보면 어떨까? 여전히 몸치이고 움직임에 약한 사람이기에 또 혼자 배경에 집중할지도 모르지만, 처음보단 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 번째 시간. 울림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열정적인 선생님의 이야기는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끄는 것을 보면, 나에게 선생님 자질들이 넘쳐나긴 하는 것 같다. 어떤 사람들은 호칭에 민감하다. 나도 그럴지도 모른다. 특히나 방송작가 아카데미 수강 도전과 종합학원 초등부 국어강사 사이에서 망설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되는 학원근무를 선택했을 때 나는 선생님이라고 불리(우)는 사람이 되었었다. 그리고 논술수업 건너 수능강의 건너 특목고 대비 소수정예 일대일 집중교습 학원에서 근무했을 때, 사전 연락 없이 갑자기 펑크를 낸 학생 때문에 기다리다 포기하고 집에 가던 날이 있었다. 밝은 낮에 눈물이 났었고, 나는 작가 꿈을 버렸던 걸 처음으로 후회했었다.

다행히도 그 학생은 다음날 정중하게 사과했고, 나는 마음을 풀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글을 다시 쓰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장편소설을 썼었다. 그런데 소설의 내용이 너무 사적이라 상처받을 가까운 사람들 걱정에 또다시 작가의 꿈을 접게 되었다. 독자로 머물러 있자고 생각한 이후에도 자꾸 글을 쓰고 싶고 방법을 찾고 싶을 때 어느 북 토크에 참석했었다. 고민 상담해주는 시간에 나의 고민을 선택하여 응답해주신 <이상은 ART & PLAY(아트 앤 플레이, 예술가가 되는 법>의 이상은 아티스트가 생각난다. 나에게 자신을 좀 더 위해주며 살아가라고 10분 넘게 이야기해 주셨다.

나에게 울림을 주었던 마지막 이야기로 돌아가자. 그 학생들도 사춘기를 앓고 있었을 테고, 사춘기라는 것은 마음을 힘들게 하여, 자신의 장점들을 다 잊어버리게 하는 위험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질풍노도의 시기! 그 시기를 노를 저어 온 나의 지금을 담아낸 소설이 조만간 출간된다. 이 소설은 아주 짧고 기본 뼈대조차 나만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함께 만든 뼈대이고 내가 쓴 소설이다. 나는 주인공 ‘지희’의 성격과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데 과연 다를까? 누구나 혼자 외롭기도 하고 누구나 모두와 함께 즐겁게 지내기도 한다. 다르지만 닮았다. 닮았지만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모두가 알고 지켜줘야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그러니 내가 존중받길 원하듯 남을 존중하자. 그것이 내가 이번 서울생활로 다시 깨달은 점이고, 이것이 내가 (불)가능한 대화 모임과 함께 또 따로 만든 소설책을 쓰며 느낀 소회이다. 그리고 지금 난 커다란 난관에 봉착했다. 오늘까지 제출하기로 한 후기와 독자들에게 쓰기로 한 편지를 믹스해버려서 추출기로 분리해야 한다.

그 실험까지 즐겁게 느끼게 해주고, 나에게서 이런 자유로운 믹싱 놀이를 이끌어준 불가능한 대화, 가능한 놀이들에 감사한다!

삼일사우나_[불]가능한대화_개별적보편

구자민

삼일사우나 나의 지근거리에 낡고 오래된 그리고,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작은 사우나가 있다. 세련되고 화려한 형식을 갖춘 찜질방은 하나 둘 사라져 갔지만, 이 낡고 오래된 사우나는 묵묵히 불을 때고, 탕 속에 깨끗한 물을 채우고 있다. 이 사우나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낡고 오래된 신체를 가진 사람들이다. 그들은 쇠하고, 느리고, 말이 없고,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자기의 몸을 닦는 것에만 집중한다. 쇠하고, 느리고, 말이 없고,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자기 몸을 스스로 닦는 것-이것은 이 사우나의 암묵적 규칙이다. 사우나의 개별자들은 따뜻함과 깨끗함이라는 신뢰와 규칙 속에서 서로를 의식하지 않고 자신의 세월을 닦는다. 서로의 구분된 공간에서 자신의 공간을 교차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와 무언의 신호만으로 무관심한 대화를 이어간다. 나는 몸이 움츠러들거나 생각할 거리가 많으면, 발가벗고 있어도 따뜻한 이 사우나의 무관심을 찾아간다.

[불]가능한 대화 월광과 나는 낡고 오래된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찾아 평행하지도 교차하지도 않는 각자의 공간에서 대화를 시작하였다. 쇠하고, 느리고, 조심스럽게, 자기 몸을 닦듯 차를 마시며 대화를 시작하였다. 고통스러운 것과 불편한 것들, 그리고 나와는 멀고도 가까운 사회적 고통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며 협업의 이유를 찾아갔다. 월광은 그의 오래되고,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주었다. 그는 조형 작업으로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과 삶, 작업에 대한 커다란 조형을 보여주었다. 월광의 이야기는 사우나의 규칙과 따뜻함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 후 두 차례의 [불]가능한 대화를 통하여 각자의 삶과 예술언어를 교환하며 대화를 쌓는 워크숍을 상상하고 기획 하였다. 각자의 예술적 언어를 직관적으로 교환하고 협업하는 “실제”를 즉흥적으로 구현하여 각자의 사회적 고통과 (불)가능한 대화를 사운드와 오브제로 조형해 보기로 하였다. 대화를 쌓고 허무는 것에 상대방의 도구를 사용하여 개별적 수행의 자유로움을 감각해보는 상상은 사우나의 규칙을 따르는 것 같았다.

개별적 보편 경직되고 움츠려들 때, 발가벗고 찾을 수 있는 따뜻한 사우나는 점점 사라지고 흔하지 않은 곳이 되었다. 그 흔하지 않은 따뜻함과 투명함이 느껴진다면 나는 나의 사우나를 떠올리고 나의 네트워크이자 콜렉티브로 마음을 열게 될 것이다. “개별적 보편”으로 만난 이들의 배려와 다정함 속에서 관계의 사우나를 찾을 수 있었다. 알렉스의 워크숍을 경험하며 서로가 다정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을 느꼈고 제이의 글 모음을 통해 보편을 바라보는 다양한 “개별적 시선”을 감각할 수 있었으며, 쥰의 모임에 대한 “엄마 마음”은 가장 보편적이면서도 특별한 실행 감각을 동경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도 워크숍에 참여하여 “개별적 보편”의 넓이와 깊이를 주도해준 여러 참여자분들의 에너지 덕분에 개별적 보편이라는 관념이 조형되는 힘을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다.

예술표현의 경계들 사이에서 만남

문해주

개별적 보편 팀으로 만난 구자민, 김재현, 권정원, 이종찬, 문해주는 지난 8월의 기획회의부터 올해 마무리되는 12월 초까지 함께 여러 가지 예술실험들과 대화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처음 시작과 함께 서로 다른 관점들을 마주하기 위해 줌 회의, 오프라인 회의, 카톡과 전화, 각자의 작업재료 교환, 텍스트, 몸의 대화, 공간설치, 참여자와 함께하는 예술표현, 협업작업 등... 다양한 소통 방법들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너비1

첫 1차시 시작으로 구자민과 문해주가 함께 너비 네트워크 모임을 진행하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없었으나 그냥 느낌이 편한 사람 정도로 서로 알고 있었다. 처음으로 둘이서 기획회의를 하기 위해 만났는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혜화역 오래된 다방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창밖을 보았는데 그것이 아직도 생각난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탄 듯 긴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쭉 늘어놓았다. 여기까지 말해도 되는 건지 잊어버리고, 나는 어느새 먼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를 오가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런 대화가 오간 것은 날씨와 공간의 영향도 있고, 서로 예술작업을 해온 시간과 고민들이 마주한 순간이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무언가 해보자 이전에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이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여전히 나는 그를 다 알지는 못하고, 나 또한 나를 잘 모르지만 그냥 우리는 그 자리에 존재하고 살아있는 나무처럼 서로 그대로 마주하는 것이다. 우리는 3번의 만남을 통해 다양한 각자의 예술 재료를 교환하며 실험해 보았다. 처음 만져보았던 바이올린은 나에게 소리가 나는 오브제가 되었다. 구자민은 나의 의자 설치 작업을 해체해 보기도 하였다. 누군가 나의 작업에 개입하는 것 혹은 나의 작업의 악기가 다른 용도의 형식으로 연주되는 이 과정을 통해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의 틀에서 누구가가 들어와 연주를 하며 자유롭게 움직이는 ‘경계의 떨림’들이 퍼포먼스로 이어졌던 것 같다. 올 한해 협업 작업과 팀 작업은 더 이상 안 하고 싶다고 말하던 나는 이래서 “협업을 했었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비 2 #너비 3 너비 2 & 너비 3을 함께 참여하면서 예술가들의 예술언어와 표현의 다양한 방법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특히 너비 2의 몸의 대화 시간은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말한 것 같은 활동이었고, 몸이 살아 숨 쉬는 나의 상태와 타인의 상태를 더 이해할 수 있었다. 너비 3을 통해서는 언어가 주는 세밀한 표현들과 결들을 통해 개별이 가지고 있는 경험과 삶을 언어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예술표현들을 만나면서 내가 표현하고 있는 예술언어를 다시 점검하고, 더 다양한 예술표현들을 더 상상할 수 있었다.

#깊이 1 #깊이 2

이제 본격적으로 참여자와 함께 깊이 모임이 시작되었다. 구자민의 전시를 다 같이 가서 각자가 어떤 작업을 하는지 어떤 예술표현들을 하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 깊이 모임에는 직접 다양한 재료를 리서치하고 각자 주로 쓰는 재료, 실험해 보고 싶은 재료, 같이 실험해 보고 싶은 재료를 이야기 나누었다. 참여자와 예술가 모두 호미화방에 직접 가서 재료를 만져보고, 직접 재료를 사서, 다음 깊이 모임 때는 좀 더 적극적인 예술표현들을 구상해 보기로 했다. #깊이 3

너비 2_몸의 대화를 했던 장소에 다시 참여자들과 만나니 좀 더 편안했다. 깊이 모임의 특징은 예술가 진행하기보다 ‘참여자 누구나 적극적인 참여’가 가능하다. 깊이 모임을 통해 서로의 표현과 생각들이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 이종찬이 즉흥으로 가져온 텍스트를 읽으며, 서로 생각하는 ‘예술의 표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는 뜬금없이 일어나 움직이고, 눕고, 이야기 나누었다. 몸의 대화의 너비 모임이 자유롭게 텍스트와 만난 거 같았고, 나의 일상 속 컨디션을 체크하고 편안한 자세들을 취하며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다. 우리는 서서히 자신의 고민과 생각들을 편하게 이야기 나누는 관계가 되었다.

#깊이 4 “우리 이거 해볼까요?”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 류정현 작가님의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깊이 모임의 이러한 적극적인 참여로 인해 상대방의 삶을 대하는 태도와 예술언어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나는 이런 사람이에요." 이런 대화보다 우리는 어떠한 ‘예술적 표현들과 다양한 재료들의 만남’을 통해 나를 표현하고 싶은 다양한 욕구와 만난다. 이러한 예술적 표현과 방법들은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이번 깊이 모임을 적극적으로 제안하시고 움직여주신 참여자 모두에게 많은 영감을 받은 날이다.

#결과공유회 마지막 모임은 서로 구매했던 혹은 자신만의 재료를 직접 가져와서 작업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서로의 예술표현들을 나누는 자리가 될 것 같다. 아직 마지막 결과공유회를 앞두고 이 글을 쓰는 거라 어떠한 것들이 벌어질지 예상할 수 없지만, 자신만의 표현의 액션들이 발현되는 장을 기대해 본다. 이러한 과정들 안에서 ‘불가능한’ 혹은 ‘가능한’ 대화들은 소리로 혹은 언어로 색감으로 설치로 다양하게 구현되며 그것은 그 찰나에 존재하는 존재로 바로 서있을 때 마주할 것이다.

개별적 보편, 그리고 몸의 대화에 관한 끄적임

알렉스

‘개별적 보편’. 여전히 어려운 말이다. ‘개별적인 것이 가장 보편적이다’라는 낭만적인 해석도 가능하지만 완전한 개별성도, 혹은 완전한 보편성도 각각 독립적으로는 성립할 수 없는 개념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더군다나 이 갈등적이고 모순적인 표현은 마치 한 사람의 존재 방식과 썩 닮은 구석이 있는 것 같다. ‘나’라는 모순덩어리인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방식이 그러하다. 개별적 존재로서 나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찾아가고, 표현하고, 잃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면서도 이러한 몸부림은 늘 언제나 ‘보편적인 그 무엇’과의 대비 속에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갖는다.

개별적 보편-이라는 거창한 모임 명으로 마주친 다양한 순간들은 나에게 이 모순적인 우리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잔잔하고 유쾌하게, 그리고 때로는 강렬하고 불편하게 대면할 기회를 주었다. 우리의 대화는 항상 불완전하다. 대화가 편할 때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있다. 우리는 ‘불안’하다. 그런데 이 불안한 대화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개별성에 대해 ‘질문’하고 실재하는지도 알 수 없는 보편적 가치에 대하여 이야기하거나 생각한다. 그 누구도 서로의 개별성을 평가할 수 없지만 평가할 수 있고, 판단할 수 없지만 판단할 수 있다. 이 모순적이고 역설적인 관계망 속에서 ‘불안한 보편적 가치’가 저마다의 개별적 관점에서 탄생한다. 심지어 나의 보편적 가치는 이미 ‘나’의 주관성 안에 포섭되어 있다. 그렇다고 보편적 가치가 완전한 개별성으로부터 오는 것도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것 같은 나의 관점은 이미 수많은 나와 같은, 혹은 다른 존재들의 흔적이 쌓아온 ‘보편적인 그 무엇’과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나 또는 우리가 ‘예술’이라는 명목으로 삶 속에서 시도할 수 있는 개별적 보편’으로서의 존재 방식에는 어떠한 가능성이 있을까. ‘몸의 대화’라는 워크숍으로 이 고민에 대한 답이 아닌, 또 다른 질문의 장을 나름 시도해보았다. 아직은 서로 잘 모르는,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생각과 가치관, 관념적인 판단을 하기에 앞서, 몸으로 나를 감각하고 타인을 감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 단순해 보이는 이 활동으로 우리가 소소한 해방감과 ‘연결’을 느끼는 이유는 평소에 얼마나 나의 몸이 관념적인 강박에 구속되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나는 나라는 ‘몸’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다른 몸을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 그 형식과 표현이 무엇이든 예술은 분명 그만의 독특한 대화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대화의 껍데기를 껍데기로 볼 수 있는 감각을 주거나, 형식적인 대화를 ‘불가능한 대화’ 로 만들면서 동시에 실존적으로 ‘가능한 대화’의 장을 새롭게 펼치기도 한다.

우리는 온전히 개별적일 수도, 보편적일 수도 없는 엉성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불)가능한 대화를 나눈다. 이 대화의 장이 나에게는 여전히 어렵지만, 가장 매력적인 예술의 가능성이 있는 곳이다.